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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복음의 첫 씨앗이 뿌려진 땅, 한국 천주교의 시작 '인천'[인천에 가고 싶다] '월락재천 수상지진' 첫 영세자 이승훈 베드로가 태어나고 묻힌 성지
▲ 한국 천주교의 첫 영세자 '이승훈 베드로'의 묘. (사진제공=인천투어)

[인천게릴라뉴스=최도범 기자] '2027 가톨릭 세계청년대회'가 서울에서 열린다.

유럽대륙의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극동의 대한민국 서울로 세계청년대회 장소가 이동하는 것에 대해 교황은 "교회의 보편성을 보여주고, 일치를 향한 꿈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표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1995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이후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열리는 이번 대회를 계기로, 2천년 천주교 역사에 선교사의 도움 없이 신앙을 받아들인 목숨을 건 박해와 믿음의 한국 천주교 역사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영세자(領洗者)인 이승훈 베드로(1756~1801년)이 태어나고 묻힌 인천이 주목받고 있다.

이승훈 베드로의 무덤은 남동구 정수장 뒤편 산 중턱에 위치해 있으며, 그곳에는 현재 '이승훈 역사공원'이 조성 중이다.

비록 몇 번의 배교가 있긴 했지만 그의 마지막은 결국 천주에게 의탁된 것이었다. 또한, 그가 신유박해로 참수된 이후 아들과 손자, 증손자까지 4대에 걸쳐 8명의 순교자를 배출하며, 그와 그의 가문이 한국 천주교에 끼친 영향은 실로 큰 것이다.

이땅에 그리스도교 복음의 첫 씨앗을 뿌린 선구자로 기억되는 이승훈 베드로는 죽음을 앞두고 읊었던 "월락재천 수상지진(月落在天 水上地盡. 달은 져도 하늘에 있고, 물이 연못 위에 치솟아도 여전히 연못 속에 온전하다)"이라는 시로 자신의 신앙이 굳건함을 웅변했다.

또한, 인천은 개항과 함께 외래 문명이 도래한 곳으로 천주교 역시 인천을 통해 이 땅에 유래됐다.

1888년 7대 조선교구장인 블랑 주교의 요청으로 선교활동을 위해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4명의 수녀가 인천항에 도착한다.

현재 인천중부경찰서 정문 옆 화단에는 첫 선교 수녀 도착지를 기념하고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한국 설립 120주년을 맞은 2007년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 제물진두 순교기념경당. (사진촬영=최도범 기자)

순교자들을 감싸 안은 하느님의 두 손, '제물진두 순교기념경당'

인천 최대 순교지인 인천 중구 제물진두 순교성지에는 '제물진두 순교기념경당'이 세워져 있다.

'진두'는 나루터를 의미하는 말로, 조선 조정은 외국 문물이 자주 드나드는 나루터에서 천주교 신자를 공개 처형해 서양에 대한 배척과 함께 주민들에게 천주교에 대한 경계심을 심어주려고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영세자이자 인천 최초의 순교자인 이승훈 베드로의 후손들과 순교자들의 행적 증언에 큰 공을 세운 박순집 베드로의 외가 천주교인들이 공개처형된 장소에 세워진 '제물진두 순교기념경당'은 15m 높이로 순교자들을 감싸는 하느님의 두 손 모양을 형상화했다.

'제물진두 순교기념경당'에서 얼마 머지 않은 곳에는 1960년대 중반, 인천에 거주하는 화교를 위해 세운 '해안성당'이 있다.

원래 '선린화교본당'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 화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신자 수가 줄어 '해안성당'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지금은 한국인 신자를 위한 성당으로 사용된다. 작은 성당이지만 아직도 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제물진두 순교성지와 걸어서 2분 거리에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 인천교구 대표 성당 '답동성당'. (사진제공=인천투어)

인천교구 대표 성당 사적 제287호 '답동성당'

'해안성당'을 나와 신포시장을 지나면 우리나라 성당 중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인 '답동성당'이 있다.

인천교구의 대표 성당인 '답동성당'(사적 제287호)은 1890년대 후반에 고딕 양식으로 지었다가 1937년, 개축 공사를 하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변형됐다. 중앙에 큰 탑을 두고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성당은 웅장하고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초대 신부인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의 빌렘 신부는 도마 안중근 의사의 영적 아버지로 그에게 세례를 주었고, 1910년 직접 뤼순 감옥으로 찾아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미사를 봉헌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일로 빌렘 신부는 뮈텔 주교와 갈등을 겪다 결국 한국을 떠나기도 한다.

'답동성당' 안에는 '성바오로 수녀원'이 있다.

1894년 인천항에 장티푸스가 퍼지자 간호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을 위해 마라발 신부의 건의로 답동성당 안에 됐으며, 보육사업과 더불어 무료진료를 매개로 선교 활동을 했다.

이 외에도 대한성공회 최초의 교회인 '인천내동교회'(인천시 유형문화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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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범 기자  ingnews@ing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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