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 선생. <사진제공=죽산 조봉암 선생 기념사업회>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라 한 대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누가복음 23장 22~23절)

[인천게릴라뉴스=박봉민 기자] 1959년 7월 31일. 일생을 조국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 온 ‘사형수 조봉암’은 마지막 순간 성경 한 구절을 청해 듣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의 죄명은 국가변란과 간첩죄.

하지만, 훗날 그의 죽음은 헌정사상 최초의 ‘사법살인’이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남긴다.

조봉암(曺奉岩)의 호는 죽산(竹山), 본관은 창녕(昌寧). 인천 강화 사람이다.

그의 일생은 열사(烈士)의 삶, 그 자체였다. 생의 절반 이상을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鬪士)였으며, 해방 조국에서는 참된 민주주의를 고민한 지사(志士)였고, 평등과 자유를 갈망하는 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열사이다.

1899년 9월 25일.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조봉암은 21살이 되던 1919년 3·1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투옥되며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 그는 공산주의의 길을 걷는다.

일본 주오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할 당시인 1921년 조봉암은 무정부주의 비밀결사체인 흑도회(黑濤會)에서 잠시 활동한 바 있으며 이듬해인 1922년에는 국내로 돌아와 본격적인 독립운동과 함께 공산주의 운동을 시작한다.

해방 후에도 조선공산당, 건국준비위원회 등의 공산주의 계열에서 활동을 이어가다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노선에 반대해 사상을 전향한 후에는 제헌국회의원, 초대 농림부 장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초기 안정에 기여한다.

특히, 농림부 장관 시절 그는 유상매수 무상분배안과 유상매수 유상분배안을 혼용한 농지개혁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해 ‘계민수전(計民授田)’을 이루고, 오늘날의 추곡수매의 전신인 양곡매입법 제정을 주도해 농촌경제 안정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6·25 전쟁 중 이승만 실각과 내각제 개헌 운동에 참여하며 이승만과 멀어진 조봉암은 1952년 직선제로 치러진 제2대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차점으로 낙선하고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30% 가량의 지지를 얻으며,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을 위협하는 유력한 야당정치인으로 입지를 굳힌다.

이후 우리나라 헌정사상 첫 진보정당인 ‘진보당’을 창당하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넘어선 제3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진보당 창당대회에서 조봉암은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남북통일, 인민민주주의 실현, 생산 및 분배의 합리적 통제를 통한 민족자본의 육성, 사회보장제도 도입, 교육의 국가보장 실시” 등을 주장했고 이는 진보당 강령에도 반영된다.

이러한 조봉암과 진보당의 노선은 당시로써는 급진적인 것이었고, 사회가 담아내기에는 너무도 벅찼다. 그리고 진보당은 그의 생사를 가르는 결정적 빌미가 된다. 하지만, 진보당은 이후 진보정당 운동의 주춧돌로써 평가받고 있다.

▲ 조봉암 선생은 사형판결 이후 재심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진은 당시의 신문기사. <사진제공=죽산 조봉암 선생 기념사업회>

1958년, 이른바 ‘진보당사건’에 연루되며 간첩죄로 사형을 선고 받은 조봉암은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박사(이승만)는 소수가 잘 살기 위한 정치를 했고, 나와 동지들은 국민 대다수가 잘 살게 하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을 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 밖에 없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죽임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죽는 그 순간까지 그는 옳은 일을 하는 열사요, 선비모습 그대로였다.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이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 아니냐.”(죽산 조봉암 선생 묘 표지석 글귀 중에서)

▲ 조봉암 선생은 사형판결 이후 재심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진은 당시의 신문기사. <사진제공=죽산 조봉암 선생 기념사업회>

그의 억울한 죽음은 2011년 재심에서 국가변란죄와 간첩죄가 무죄 판결을 받으며 일정부분 회복된다. 하지만, 아직 조봉암에 대한 온전한 명예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가는 아직 그를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그가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신은 아직 어느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다.

그저 옳은 일이기에,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 일이기에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겠지만, 자신이 목숨을 바쳐 싸워 배격하려 했던 ‘민족을 배신한 친일행위자’로 불릴 것이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억울했던 죽음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이 현실이 견디기 힘든 고통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살아남은 우리가 할 몫은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억울함을 풀어 독립투사에게 합당한 서훈을 추서하고, 그의 삶 전체를 왜곡 없이 제대로 평가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에게 지워진 무거운 십자가를 내려, 평안히 쉴 수 있도록 함이 우리의 할 도리일 것이다.

박봉민 기자  ingnews@ingnews.kr

<저작권자 © 인천게릴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