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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역사의 태동, 인천 개항장에서 마주하는 어제와 오늘”[철길 따라 떠나는 인천여행 Ⅰ] 한국철도의 시작 ‘인천역’ 4편

인천 개항장은 한국 근대사의 큰 이정표들이 세워진 곳이다.

처음 근대 서구 문물과 문화가 이곳 개항장을 통해 들어 왔고, 이후 우리 역사는 격동의 시기를 맞기도 했다.

아직도 남아 있는 근대 역사의 흔적과 굵직한 이정표들은 우리의 오늘이 있게 한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다.

인천 개항장 역사문화거리 여행을 마치며, 우리의 어제와 마주하고 다시 찾아올 봄을 기다린다.

= 다시 올 봄을 기다리며, 인천 개항장에서 =

▲ 인천 중동우체국. (사진제공=인천시 중구청)

“한국 근대 우편·우정 제도의 역사,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8호 ‘인천 중동우체국’”

[인천게릴라뉴스=조경희 기자] 인천역에서 내려 시내버스 15번 또는 28번을 타고 동인천역 방향으로 이동하면 우리나라 우정업무의 초석이 된 ‘인천 중동우체국’을 만난다.

인천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물로 평가 받는 중동우체국은 1884년 11월 18일(음력 10월 1일)에 설립됐다.

우리나라의 근대통신은 1884년 한성의 우정총국과 인천의 우정분국 간의 우편업무를 개시하면서 시작됐다. 그래서 인천의 우편행정 역사는 곧 우리나라의 우정역사이고, 중동우체국은 우정업무가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다. 중동우체국은 1923년에 신축한 문화유산으로 동서양의 건축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돼 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됐다.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침탈 당한 1905년 일본은 우리나라 통신권을 강탈해 국내에 있는 통신기관을 일본 우편국과 통합해 운영했다. 이후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개항지 인천이 빠르게 발전하자 인구가 증가하고 우편 이용자가 급증하게 되자 보다 넓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1923년 12월 인천우편국은 중구 항동에 있는 매립지에 2층 건물을 지어 이전했다.

서양식으로 새로 지은 인천우체국 건물은 당시 유행하던 절충주의 양식을 단순화한 것으로 이색적인 모양이었다. 서양식 건축 양식과 일본식 건축 양식을 적절하게 섞어 지은 건물이어서 당시로서는 첫눈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화강암을 거칠게 다듬은 방식으로 처리해 기단처럼 보이게 하고 그 위에 벽돌을 쌓아올린 2층 벽돌조 건물로, 관공서 건물로는 크고 우아한 멋이 있어 단박에 인천의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 신포국제시장. (사진제공=인천시 중구청)

“인천 최초의 근대 상설시장, 100년 역사의 신포국제시장”

‘인천 중동우체국’을 지나면 역사, 전통, 문화가 공존하는 100년 역사의 인천 대표시장인 ‘신포국제시장’과 만난다.

푸성귀 시장과 어시장에서 시작한 신포국제시장은 인천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으로, 개항이 시작되기 전에는 ‘터진개’라는 이름으로 불리었고, 개항 이후에 ‘새로운 항구’를 의미하는 ‘신포’라는 이름을 얻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0년에는 ‘신포시장’에서 ‘신포국제시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시장 내 쉼터에 조성된 푸성귀 시장 조형물을 보면 19세기 말 과거의 시장 풍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푸성귀전 안에는 20여개의 채소가게가 있었다. 주로중국인 화농들이 일본인 고객에게 양파, 당근, 토마토, 피망 등의 새로운 채소를 팔았다. 푸성귀전 외에도 어시장에서 기존의 상인들과 일본인 상인들이 경쟁을 벌이며 점차 거대한 시장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개항기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인천의 대표 전통시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외국인이 가기 좋은 전통시장으로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모두 인정 받은 시장이다.

‘신포국제시장’은 입구가 여러 개이고, 다양한 품목 별로 구역을 나누어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지도를 보고 다문화 음식골목, 수선골목, 생선골목, 칼국수골목, 청년몰 눈꽃마을 등 위치를 파악해서 둘러 보면 효율적이다.

관광객을 위한 음식점도 많지만, 다양한 물건과 반찬들도 판매하고 있어 인천을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지역민이 자주 찾는 전통시장이기도 하다. 골목 골목을 누비다 보면 과거 어시장과 닭전을 연상할 수 있는 민어횟집, 닭집도 자리하고 있다.

민어횟집골목에는 빨간색 등대가 돋보이는 등대공원이 있다. 신포국제시장의 등대공원은 전국의 전통시장 중 유일하게 시장 내부에 위치한 공원이다. 바다와 등대를 테마로 한 장소로 기념사진을 남기기에 좋다. 청년몰 눈꽃 마을도 눈과 겨울을 테마로 한 장소로 포토존이 있어 기념사진을 남기기에 좋다.

신포국제시장에서는 닭강정, 공갈빵, 오색만두, 쫄면 등 각양각색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시장 입구의 닭강정은 신포국제시장의 대표메뉴로 많은 사람이 대기하고 있다. 갓 튀긴 닭에 물엿과 청양고추가 들어간 특제소스를 버무려 맛이 좋다.

공갈빵과 만두도 신포국제시장의 인기 메뉴이다. 공갈빵은 화덕에서 직접 구워 만들어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식감의 달콤한 간식이다. 쫄면은 1970년대 초반 인천의 제면소에서 실수로 탄생한 음식이다.

굵고쫄깃한 면발에 고추장 양념을 버무려 팔던 것이 지금까지도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이 곳에서 원조 쫄면을 맛볼 수 있다.

신포국제시장 인근에 자유공원, 답동성당, 홍예문, 차이나타운 등 관광지가 많아 코스를 짜서 둘러 보기 좋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신포국제시장에서 진행하고 있는 ‘개화산책 스탬프 투어’ 코스 5곳(트릭아트스토리-짜장면박물관-인천개항박물관-눈꽃마을-신포국제시장지원센터)을 보는 것도 좋다.

개화산책 스탬프투어 코스대로 여행하며 리플렛에 스탬프를 찍으면 마지막 코스인 신포국제시장 지원센터에서 경품을 수령할 수 있다.

신포국제시장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방문할 수도 있다. 수인선 신포역과 1호선 인천역이 인근에 위치해 있어 대중교통으로도 이동이 편리하며, 신포지하상가를 통해 동인천역까지 이동할 수도 있다.

▲ 답동성당. (사진제공=인천시 중구청)

“인천 최초의 천주교 성당, 사적 제287호 ‘답동성당’”

‘신포국제시장’을 지나면 인천 최초의 천주교 성당인 사적 제287호 ‘답동성당’을 마주한다.

우리나라의 근대화 역사와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는 ‘답동성당’은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로 돔형 천장과 기둥, 스테인드글라스로 인해 더욱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1889년 프랑스 외방선교회 소속 빌렘 신부(J.Wilhelm)가 초대 본당 신부로 부임하며 작은 임시 성당을 마련한 후, 답동 언덕 일대의 땅을 기증 받아 1890년 답동 언덕에서 성당의 정초식을 가졌다.

제2대 르비엘(Leviel,E) 신부가 성당 건립 비용을 마련해 경리부 건물 1동을 건립하면서 임시 성당으로 사용했다. 1894년 코스트(Coste,E.J.G)와 샤르즈뵈프(Chargebeouf) 신부가 성당의 기초 설계도를 그렸으나 청일전쟁으로 건립이 중단됐다.

1895년 8월 공사를 착수해 1897년 7월 완공할 수 있었다. 당시 종탑은 교회의 상징물이었으나 종이 설치된 것은 성당이 완공된 3년 뒤인 1900년의 일이었다. 처음 건립 당시는 직선적이고 뾰족한 첨탑이 특징인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으나, 1937년 증축하면서 건물 외관을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리고 아치와 둥근 돔이 특징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개축공사를 했다. 붉은색 외관과 정면에서 보이는 3개의 종탑과 뾰족한 돔이 특징이다.

‘답동성당’은 100년이 넘는 역사와 함께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가치를 만들고자 했던 인물들의 노력이 담겨 있다. 건축물 자체로서도 역사적 가치가 크지만 천주교 인천교구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인천시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가톨릭 건축물로 내리교회와 더불어 인천에서 유서 깊은 종교시설로 유명한 곳이다.

‘답동성당’은 동인천역과도 가깝다.

▲ 내리교회. (사진제공=인천시 중구청)

“개신교 선교의 발상지이자 최초의 감리교회 ‘내리교회(웨슬리 예배당)’”

개항장 역사 문화거리 마지막 여행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인 ‘내리교회’이다.

한국 개신교 선교의 발상지로 개화기와 선교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내리교회’는 교육과 선교를 병행하여 개화기 한국에 신문물을 들여오는 데 일조했다. 현재는 선교 100주년 기념 예배당, 2011년 신축한 아펜젤러 비전센터, 2013년 예전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십자가형 웨슬리 예배당, 총 3개의 건물이 있다. 교회 곳곳에 선교 역사 자료와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어 우리나라 개신교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장소이다.

1885년 4월 5일, 감리교 공식 선교사인 아펜젤러 부부는 제물포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이들은 서울로 이동하지 않고 약 45일간 제물포에 머물며 선교활동을 했고, 이를 통해 내리교회가 세워졌다.

내리교회는 한국 개신교 선교의 발상지로 ‘최초’라는 기록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1892년 설립된 최초의 사립초등교육기관인 영화초등학교, 1895년 건축한 최초의 여성 전용 예배당, 1901년 안수받은 개신교 최초의 목사 김기범, 같은 해 세워진 인천 최초의 서구식 예배당인 웨슬리 예배당, 1954년 헨델의 메시아 전곡 초연, 우리나라 최초로 하와이 이민을 주관하는 등 수 많은 최초의 기록들이 있다.

1885년에 설립된 ‘내리교회’는 1901년 12월 옛 교회를 허물고 벽돌로 십자형의 새 건물을 지었다가, 1955년에 다시 허물고 다시 지었다. 1958년 한 번의 개축 후 현재 모습의 선교 100주년 예배 기념예배당을 완성한다. 예배당의 종탑이 꽤 높기 때문에 근방 지역 어디에서도 예배당 건물이 잘 보인다. 최근에는 옛 선조들의 신앙을 본받자는 취지로 허물었던 웨슬리 예배당을 복원했다.

웨슬리 예배당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어 십자가 예배당으로 부르기도 한다.

‘내리교회’는 지하철 1호선 동인천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ingnews@ing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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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희 기자  ingnews@ing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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