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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의 굴곡과 고단한 삶의 시간을 오롯이 기억하는 곳”[철길 따라 떠나는 인천여행 Ⅰ] 한국철도의 시작 ‘인천역’ ③

인천 응봉산은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와 아픔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새로운 문물이 물밀 듯 들이닥치던 격변의 시기에도, 식민지의 백성의 수탈의 시간과 아픔도, 동족상잔의 비극도, 또한 전후 번영의 시간도...산은 모든 것을 보았고,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다시 오늘을 보고 기억한다. 산은 역사다.

= 2022년 1월, 인천 응봉산 ‘자유공원’에서 =

▲ 자유공원. (사진제공=인천시 중구청)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 ‘자유공원’”

[인천게릴라뉴스] 조경희 기자 = 인천역에서 하차해 5분 가량을 걸으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자유공원’과 만난다.

‘자유공원’은 인천항 개항 뒤인 1888년 외국인 거류민단에서 관리·운영해 당시 시민들은 이를 ‘각국공원’이라 불렀고, 그 뒤 일본의 세력이 커지면서 1914년 각국 거류지의 철폐와 함께 공원 관리권이 인천부로 이관되자 그때부터는 ‘서공원’으로 불렸다.

1945년 해방 후에는 ‘만국공원’으로 불렸으며,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세워진 1957년 10월 3일부터 ‘자유공원’으로 개칭돼 오늘에 이른다.

인천시 중구 시내의 중심에 위치해 응봉산 전체가 공원화된 ‘자유공원’에는 맥아더 장군 동상과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을 비롯해 자연보호헌장탑, 충혼탑, 석정루 등을 보존하고 있다. 주변으로는 홍예문과 제물포구락부, 인천기상대가 위치해 있어 볼거리가 많다.

또한,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석정루에 오르면 인천항과 월미산 북성포구 등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장관이 펼쳐진다. 특히 봄이면 만개한 벚꽃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인기 드라마 ‘도깨비’를 비롯해 각종 드라마,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사진제공=인천시 중구청)

“130년 혈맹(血盟)의 기억,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특히, ‘자유공원’에서 꼭 빼놓지 말아야할 역사적 상징 하나는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이다.

1882년 5월 화도진 언덕에서 체결된 ‘한미수호통상조약’을 기념해 꼭 100주년이 되던 1982년에 건축가 강석원, 조각가 최만린, 시인 박두진 등이 참여해 건립된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은 15.5~20m 높이의 탑 8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앞에는 ‘움직임:그100년’이라는 기념조형물이함께 위치해 한미 양국의 우호협력을 상징하고 있다.

▲ 제물포 구락. (사진제공=인천시 중구청)

“국제적 문화교류와 사교의 장, ‘제물포 구락부’”

‘자유공원’ 내 또 하나의 역사적 공간인 ‘제물포 구락’부는 개항장 주변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장으로 서로 간의 문화를 교류하던 곳이다.

원래의 명칭은 ‘제물포클럽’이었지만 클럽(Club)을 일본식으로 구락부(俱樂部)라고 표기한 것이 굳어져서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은 옛모습을 재현해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일본식 표기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성을 고려해 ‘제물포구락부’로 부르고 있다.

1914년 이후 일본이 일본재향군인회관으로 사용했고, 광복 후에는 미군이 장교클럽으로 사용했으며, 1953년부터 1990년까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이용됐다. 이어 1990년부터 2006년까지 ‘인천문화원’으로 사용하다가, 2007년 ‘제물포구락부’로 복원됐다.

특히, 2007년 다시 문을 연 ‘제물포 구락부’는 옛 회원국 중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독일 등의 국가들과 ‘인천국제문화교류페스티’벌을 진행하는 등 지금도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장으로서 역할과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은 어린이, 청소년, 일반 시민들의 문화 교류 창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홍예문. (사진제공=인천시 중구청)

“산 허리를 잘라 조선인의 피로 만든 무지개, ‘홍예문’”

‘자유공원’을 내려오면 응봉산을 관통해 인천항과 전동을 연결하는 무지개 모양의 돌문인 ‘홍예문(虹霓門)’과 만난다.

“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의 홍예문은, 응봉산 산허리를 뚝 잘라 높이 약 13m, 폭 약 7m의 화강암 석축을 차곡하게 쌓고 터널처럼 만든 석문이다. 1906년에 착공해 1908년 준공됐다.

1905년 당시 인천 중앙동과 관동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수가 급격히 늘자 만석동 방면으로 일본인 조계지를 확장해 물자수송을 편리하게 하고, 각국 조계지로 가기 위해 일본공병대가 응봉산허리를 잘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인들은 산의 구멍을 뚫었다고 하여 ‘혈문(穴門)’이라고 불렀지만, 수많은 희생이 따른 조선인에게는 피로 만든 ‘혈문(血門)’이 되어버린 아픈 과거를 지닌 곳이다.

‘홍예문’은 승용차 두 대가 동시에 통과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통로가 좁고, 건물 5층 정도의 높은 높이로 독특한 양식을 지녔다. 홍예문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비탈길이 보이며, 그 길을 따라 오르면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특히, 홍예문은 무지개 모양의 아름다운 모습과 특이한 분위기 덕분에 수많은 드라마, 영화, CF 등의 촬영 배경이 되기도 했다.

‘홍예문’은 화강석과 벽돌을 혼용한 아치형 돌문의 일본 건축양식이 11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원형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인천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돼 있다.

※ 다음 편에서는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 마지막 순서로 ‘인천 중동우체국-신포국제시장-답동성당-내리교회(웨슬리예배당)’까지를 여행한다.

ingnews@ing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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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희 기자  ingnews@ing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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