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종교 포토
인천 내리교회,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130년의 역사한국 최초의 개신교회…1885년 제물포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나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9)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 5:16)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누가 16:15)

인천 내리교회. <사진=최도범 기자>

[인천게릴라뉴스=박봉민 기자] “하늘엔 영광, 땅위엔 기쁨” 구세주의 복음을 동방의 끝까지 전하러 온 푸른 눈의 선교사가 있었다.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감리교).

그는 1885년 부활절(4월 5일)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장로교)와 함께 인천 제물포를 통해 조선에 첫 발을 내딛으며 이 땅의 복음을 위해 기도하고 찬송했다. 한국 개신교(감리교)의 시작이다.

푸른 눈의 선교사가 전한 복음

제물포에 도착한 뒤 그는 미국 북감리회 선교부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부활절에 여기에 닿았습니다. 부활하시던 날 죽음의 철장을 꺾으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 맨 결박을 끊으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자유와 빛 속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We came here on Easter. May He who on that day burst asunder the bars of death, break the bonds that bind the people, and bring them to the light and liberty of God's children.)”라고 적는다.

복음 전파를 위한 의지를 오롯이 확인할 수 있는 일화이다.

이러한 복음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1890년,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당인 6칸 회당이 건축되었고, 아펜젤러가 조선에 첫 발을 내딛은 지 6년 만인 1891년 11월, 한국 최초의 감리교 개신교회인 ‘내리교회’ 예배당이 건립돼 ‘화이트 채플(White Chapel)-하얀 예배당’이라 명명됐다.

최초 건립 당시 내리교회는 35.6m²(10.8평) 규모에 바닥에 마루를 깔고 외벽에 석회를 발랐으며 지붕은 일본식 기와를 얻었다. 2개의 방 중 작은 방은 12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크기로 예배를 봉헌할 수 있도록 설교단만 둔 단순한 구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교인의 증가에 따라 1900년 6월, 내동에 웨슬리 예배당을 착공해 이듬해인 1901년 완공해 이전하였으며 웨슬리 예배당은 1955년 멸실되었다가 1958년 재건됐지만 1964년 다시 화재로 전소해 지난 2012년에 복원됐다. 현재의 예배당은 1985년 창립100주년을 기념해 건립한 예배당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회인 ‘인천 내리교회’의 초기 사역자들. 왼쪽에서부터 내리교회를 처음 건립한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 선교사, 우리나라 최초의 안수목사인 김기범 목사. 내리교회 제2대 담임 목사인 조지 헤버 존슨 목사. <사진=최도범 기자>

‘한국의 어머니교회’…한국인 최초의 안수 목사 배출

내리교회가 한국 개신교사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1893년에는 최초의 여선교회 조직인 ‘보호여회’, 1894년 최초의 자비교회당 건립, 1895년 최초의 자비 개척교회인 담방리교회(現 만수교회) 건립, 1899년 최초의 기독청년회인 ‘내리 엡윗청년회’ 조직, 1901년 내리교회 초대교인인 김기범 목사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처럼 내리교회는 ‘한국의 어머니교회’로 불리며 한국 개신교회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사랑을 많이 갖고 있는가.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특히, 아펜젤러는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그가 자신의 며느리에게 남긴 “사랑을 많이 갖고 있는가.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라는 말은 어린이들에 대한 그의 관심과 사랑을 반증한다.

그 결과물이 1892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인 영화학교이다.

인천 최초의 개신교회 예배당인 ‘제물포 웨슬리 예배당’. 1901년 처음 건립되었다 1955년 멸실된 것을 1958년 다시 건립하였으나 1964년 소실되고 만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85년 창립 100주년을 맞아 건립된 것이다. <사진=최도범 기자>

이 땅에 구세주의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푸른 눈의 선교사와 그의 정신을 이어 받아 지난 130여년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던 인천 ‘내리교회’의 역사는 세계 개신교사에 길이 남을 귀감이다.

한편, 인천 ‘내리교회’는 설립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 개신교 선교의 선봉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내리교회의 선교활동은 영혼을 구하는 복음 전도 운동, 우리의 생각과 언어와 행위를 성결케 하는 성화운동, 선화와 선교·박애운동을 비전으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박봉민 기자  ingnews@ingnews.kr

<저작권자 © 인천게릴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봉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