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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의 편지] 추락하는 교권, 날개는 있는가?

[인천게릴라뉴스=최도범 기자] “어제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오빠와 여동생으로 역할을 분담해 상황 극을 했다고 하는데요 글쎄 선생이라는 작자가 오빠 역할을 맡은 우리 아이에게 가정교육을 그렇게 받았느냐고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주었다고 하네요”

“그 말을 듣고 울화가 치밀어 선생◯에게 전화로 들이 받고 오늘 학교로 찾아 가려고 나왔는데 언니들 전화 받고 학교는 내일 가기로 하고 여기에 나왔어요...까르르”

이 말을 듣고 있자니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학부모의 심정이 이해가 갔습니다.

그러나 다음 대화에서 말문이 막히고 도저히 학부모의 얼굴을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아마 상황 극에서 여동생 역할을 하는 친구에게 ‘야!’라고 불렀나 봐요. 그러자 선생이라는 것이 우리 아이를 세워 놓고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너희 집에서 동생에게 그렇게 부르느냐. 그것은 좋지 못하다’라고 망신을 주었다는 거예요”

이 대목은 선생님으로서는 당연한 교육이었고 가정 안에서의 상황을 만들어 가족 간 예의를 지킬 것을 주문한 선생님의 훈육은 정상적인 교육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학부모는 자신의 아이와 자신의 가정교육 방식이 남의 입에 오르내렸다는 것만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선생님에게 불만을 쏟아 부은 것입니다.

그리고 당당하다는 듯이 지금의 자신은 식당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주변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성으로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다섯 사람이 떠드는 식당 안에는 모두가 황당한 눈빛으로 이들을 지켜봅니다.

‘교권’은 교육자로서의 권리나 권위를 뜻하는 말로 학부모에게는 학부모로서의 권리가 있고 학생에게는 학생으로의 권리가 있듯이 교사에게는 ‘ 교권’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권’은 한 없이 추락하고 있고 그 끝을 알 수 없이 추락하는 몸 자락에 날개가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교실에서 자는 학생을 깨웠다는 이유로 제자에게 두들겨 맞아 얼굴이 함몰되는 사고에 선생님의 얼굴에 침을 뱉는 학생들 그리고 이번에는 선생님의 교육을 자신의 안주거리로 삼아 농 짓거리를 일삼는 학부형들...

저자는 교육의 미래가 어디에 있고 앞으로 이렇게 자란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사 펼쳐질지 중학생을 둔 학부모로서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교권이 무너져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눈치를 살피야 하는 현실에 대해 결코 잘못이 한쪽에 만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교육이라는 차원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믿어야 할 것은 학교이자 교육자의 신념이라고 봅니다.

저는 오늘 언론인이나 지식인이 아니라 한 학부형으로 말하고자 합니다.

저희 딸이 초등학교를 다닐 당시에 아이의 말을 듣고 선생님의 교육 방식이나 훈육에 불만이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담임선생에게 느꼈던 부당한 편애 등으로 저도 화를 참지 못하고 못된 말을 아이 앞에서 불쑥 내 뱉는 등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이성을 찾기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이 당시에 교육청에 몸담고 계셨지만 저를 가르치셨던 고교 은사님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은사님은 저의 분개에 동조하지 않으시고 우리 아이의 학교를 찾아가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웃어 주셨습니다.

우리 아이는 아빠의 은사님 웃음을 본 뒤로는 지금까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선생님의 교육은 학창시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살아가며 지속적으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보여주고 함께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아이의 선생님을 욕보일 때 우리의 아이들은 평생의 스승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추락하는 교사에게 날개가 없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평생 같이할 스승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최도범 기자  ingnews@ing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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