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서쪽 끝 땅 ‘정서진(正西陣)’. <사진제공=인천시 서구청>

[인천게릴라뉴스=박철우 기자] 조선시대 한양의 경복궁 정(正)동쪽에 있는 바닷가라는 뜻에서 유래한 정동진이 있다면 인천에는 정(正)서쪽에 있는 바닷가로 정서진이 있다.

정동진과 정서진의 위치는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 광화문인가? 아니면 도로원표인가?

서울 광화문 사거리 인근에는 마치 우주선이나 팽이를 뒤집어 놓은 형상의 석상이 12개의 돌무덤에 둘러싸인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 도로의 기준을 삼는 도로 원표로 2002년 서울에서 월드컵이 개최 되는 것을 기념해 1997년 서울시가 축구공의 20면을 형상화한 세계 최초의 구조물을 설치, 주변에는 12지신의 형상을 의미하는 동판을 담은 석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 원래 ‘도로원표(道路元標)’가 있는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전”. <사진=최도범 기자>

도로 원표는 도로의 기점(起點) ·종점(終點) 또는 경과지를 표시한 것으로 총독부에 의해 1914년 경성과 인천, 군산, 대구, 부산 등 10개 도시에 원표 위치를 결정, 고시했다.

당시에 원표는 현재 광화문 이순신 동상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1937년 고종즉위40주년칭경기념비 자리로 이전해 지금껏 이어오다 광화문 사거리 인근으로 지난 1997년 신규 형상 제작돼 설치됐다. 바로 이 도로 원표로 인해 정동진과 정서진, 정남진이 좌표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과거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을 기점으로 동쪽 끝에 있다고 해서 육지 동쪽 끝단을 정동진으로 불렸고 이곳은 1995년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일출을 담은 명장면으로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며 관광지의 명소로서 급부상했다.

이와는 달리 인천의 정서진은 2002년 월드컵 기념으로 탄생한 도로 원표와 정동진의 관광 마케팅을 벤치마킹한 결과 원표를 중심으로 서쪽에 자리 잡은 지금의 정서진으로 자리 잡게 됐다.

물론, 이 정서진은 대한민국 최초의 운하인 아라뱃길이 만들어지며 관광 자원으로 개발하고자 인천 터미널 부지의 한빛 섬 인근에 그 자리를 잡게 됐으나 원래의 정서진은 이 보다 조금 북쪽에 위치한 세어도 접근 지역이다.

▲ 서울 광화문사거리 인근의 ‘도로원표(道路元標)’. 이곳을 기준으로 서쪽 끝이 ‘정서진(正西陣)’이다. <사진제공=서울시청 안전총괄본부 도로관리과 도로관리팀 김종민 주무관>

정서진과 노을

정서진은 매년 마지막날에 새해의 해를 맞이하기에 앞서 지는 마지막 해를 보기 위한 해넘이 행사를 지난해 5회를 맞았으며 10만이 넘는 관광객이 정서진을 가득 메우고 저물어가는 해를 아쉬움으로 기억한다.

이곳의 해넘이는 정동진의 해가 기운찬 모습으로 솟아오른다면 정서진의 낙조는 붉고 노란 그리고 짙은 청색의 보색을 띈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세상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특히, 인천 앞바다는 지리적으로 바닷가에 영종도 강화도 세어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해안가에 가까이 있어 섬이 없이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해를 구경하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유독 이 곳의 한 부분에는 섬과 섬사이 바다로 들어가는 낙조를 구경할 수 있는 명당자리가 있다.

아울러 정서진과 함께 있는 아라뱃길 인천 터미널 선착장에 설치된 차가운 금속의 원형들의 조합을 이룬 조형물은 사계절 주변의 색을 대신하지만 유독 겨울의 색상은 하얀 눈과 더불어 황홀한 노을의 색깔을 더욱 빛내며 혼자 있는 것을 아름답게 느끼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어 이 곳을 찾고 있는 관광객들의 사진 셔터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 아라뱃길 인천터미널의 조형물. <사진제공=인천시 서구청>

관광지 ‘정서진’

정서진의 출발은 그리 녹녹하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정서진의 이름을 사용한 것은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의 만리포 해수욕장이 한반도 남쪽에서 서쪽으로 땅끝이라해서 2005년부터 ‘정서진’이라 선포하고 이를 홍보하기에 나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먼저 불렀다는 이유보다는 정동진의 기원이 경복궁의 서쪽 땅끝이듯 정서진은 경복궁 서쪽의 땅끝으로 정리되며 태안에서 그 이름을 인천으로 가져오게 됐다.

정서진은 이외에도 자리 잡게 될 아라뱃길이 건설 초기부터 물류 기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4대강 사업과 더불어 이명박 정부의 건설 정치의 대명사로 불리며 줄곳 언론의 뭇매를 맞자 정서진에 대한 기대가 사뭇 폄하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또한, 아라뱃길의 시설에 대한 관리는 수자원 공사에게 있는 반면 다리와 같이 보수가 필요한 시설에 대해서는 인천시로 소유권과 더불어 관리권까지 이양되며 부담이 발생하자 시민들의 정서는 자연스럽게 정서진에 대한 기대까지 가라앉히는 결과를 가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해당 구청과 더불어 관계자들의 노력은 이곳 정서진을 노을이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었고 급기야는 해넘이 축제를 열던 첫해에 10만 이상의 관광객을 한 자리에 모으며 기염을 토했다.

이외에도 정서진은 자전거 국토 대장정의 출발점으로 자전거 마니아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으로 여겨지며 평일에도 자전거 관광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 ‘정서진(正西陣)’은 오늘보다 찬란한 내일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땅이다.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는 ‘정서진(正西陣) 해넘이 축제’ 모습. <사진제공=인천시 서구청>

정서진 ‘석양’의 차이

정서진은 서쪽 땅끝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천의 정서진은 노을을 기억하게하고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르듯 올해를 마감하고 내년의 첫 태양을 띄울 것을 하늘로부터 약속받는 관광지의 종점이자 성지이다.

평소에 일출은 뜨거운 모습으로 아침의 문을 여는 태양을 연상하지만 정동진의 일출은 땅끝에서 새해 첫 아침을 맞이하는 태양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마찬가지로 석양은 노을을 만들며 매일 저녁 바다에 붉은 물을 들이지만 정서진의 석양은 해넘이 그 이름부터 남다르다. 해넘이는 해가 바다로 넘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해지만 올해의 마지막 태양을 내리고 새해의 태양을 띄울 것을 약속하는 한해의 마지막이란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정서진의 태양은 가장 늦게 가라앉는다.

▲ ‘정서진(正西陣)’은 대한민국에서 마지막까지 태양이 비추는 땅이다. <사진제공=인천시 서구청>

박철우 기자  ingnews@ing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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