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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任那)는 가야(伽倻)가 아닌 대마도(大馬島)였다”인하대학교 고고학과,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허구성 실증
▲ 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과의 남창희 교수 연구팀은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된 <일본서기> 기록을 분석해 임나가 가야가 아닌 대마도였음을 실증했다. <사진제공=인하대학교>

[인천게릴라뉴스=박봉민 기자] 서기 365년부터 200년 간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식민지배 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의 허구성이 국내·외 학계를 통해 실증되고 있다.

특히, 최근 국내 학계에서는 “임나(任那)가 가야가 아닌 대마도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아 관심이 집중된다.

인하대학교 고고학과 답사팀은 최근 세계환단학회, 군사고고연구회 등과 함께 ‘규슈-대마도 고적답사’를 실시하는 한편,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인용되고 있는 <일본서기> 기록을 분석해 임나일본부설의 논리적 모순을 다수 발견했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변학자들은 <일본서기> 신공황후 기록을 인용하며 신라를 정벌한 365년부터 200년간 식민통치기관인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고, 북부는 한사군에 의해 지배됐으므로 일제의 35년 식민통치는 한국의 원래 상태로 돌아간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소위 식민사관을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과의 남창희 교수 연구팀은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된 <일본서기> 중애천황조 기록을 조목조목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남창희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바닷물이 나라 안으로 들어 와 겁을 먹은 신라왕이 항복했다 <일본서기> 기록의 경우, 동해는 원래 조수간만의 차이가 별로 없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해발고도 상 신라의 수도 경주는 밀물이 들어 올 수 없는 곳으로, 경주 시내의 형산강(서천)의 둔치 해발고도가 28m이고 시내 평지 표고가 30-40m에 달한다”며 “특히, 4세기까지는 부산과 김해 등 남해안 지역은 가야세력권이라 신라와는 무관하므로 한반도에서는 신공황후 신라정벌설에 해당하는 곳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연구팀은 이병선 부산대학교 교수의 주장을 근거로 한반도 외에 원정함대가 후쿠오카에서 상륙 작전을 해야 하는 곳은 대마도와 이키섬 두 지역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대마도 한일 고대사 관련 유적지를 답사하는 군사고고연구회와 세계환단학회 임원들의 기념촬영. <사진제공=인하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일본 대마도 아소만(淺茅灣)의 와타스미 신사의 수중(水中) 도리이(신사의 입구문)는 만조 때 최대 2미터 물에 잠길 정도로 대마도는 뚜렷한 조수간만 현상이 발견되며, 양홍진 한국천문연구원 박사가 반복적으로 데이터 입력해 확인한 결과, 일본서기에 나오는 기록 기해월 신축일을 조수간만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계산해 본 결과 그날부터 3일간 만조였고 당시 후쿠오카에서 배로 사흘 걸릴 수 있는 대마도 서측에 사리현상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났다.

따라서, 신공황후가 정벌했다는 신라는 한반도의 신라가 아니고 대마도의 서측 연안의 신라계 세력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결론이다.

이는 ‘규슈-대마도 고적답사팀’이 대마도의 서북 좌호만(佐護灣) 지역이 작은 성읍국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북쪽 지역에서 신라계 토기가 다수 발견되는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또한, <일본서기> 숭신천황 65년 기록에 의하면 임나는 후쿠오카에서 2000리 떨어져 있고 신라 경주의 서남방향에 있으며 북쪽은 바다로 가로막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최대석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와 북한의 김석형 등은 이 기록을 정밀 분석한 결과 대마도가 임나라고 비정한 바 있다”며 “신공황후는 신라를 정벌한 것이 아니라 대마도 서북쪽 신라계 성읍국가를 공략했고 여기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고 하면 모든 이야기가 맞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작은 대마도에 신라계, 고구려계, 백제계가 병존했다면 <일본서기>의 많은 기록에서 대륙의 고구려, 백제, 신라가 마치 이웃 마을들처럼 모여 있는 것처럼 묘사되는 의문점도 해소된다”며 “군사고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신공황후의 원정군은 상륙작전에 용이하도록 만조 수위가 가장 높을 때 만(灣) 입구에서 군사력 시위를 하는 심리전을 구사했다”고 분석했다.

▲ 대마도 곳곳에는 임나(任那)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사진제공=인하대학교>

아울러 “365년 당시 한반도의 국제정세를 놓고 정치군사게임(PolMil 분석)을 하면 신라는 대마도의 신라계 세력을 공격하는 백제의 동맹국 왜(倭)의 공세에 대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가야를 동맹을 한 백제의 해군력이 우월했고 백제가 김해나 부산 지역에 현존함대(Fleet in Being) 전략으로 신라 지원 수군을 묶어 두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이에 대해 규슈대학과의 학술교류를 겸해 답사에 동행한 세계환단학회 총무이사인 안병우 충북대학교 교수는 “해양학을 과학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에 설득력이 높다”고 말했고, 정유영 창원대학교 학장 역시 “일본의 우익정권이 계속되면서 후소샤 등 극우 교과서 출판사가 임나일본부설을 다시 주장하는 가운데 그 허구성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게 된 것은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남창희 교수팀은 “문재인 대통령이 올바른 가야사 복원을 학계에 주문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일부 학자들이 가야가 임나라는 일본 우익 학설에 동조하는 움직임에 쐐기를 박는 의미 있는 성과”라고 자평했다.

박봉민 기자  ingnews@ing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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